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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소평의 고향집
현재 앞에서 보이는것은 등소평의 고향집 이다. 1904년8월22일에 세기 위인, 중국 개혁 개방 현대화 건설의 총 설계사 등소평은 이곳에서 탄생하였다. 이 농후한 사천 동부 풍정으로 넘치는 농가 삼합원은 현지인들로 부터 “등가 노원자”라고 친절히 부른다. 고향집은 동쪽에서 서쪽향이며 등소평 조상 3대가 선후로 건설하였다. 최초에 건설된것은 북쪽의 북상방이다. 북상방은 창나라 동치년간에 등소평의 증조부가 건설하였으며 지금까지 170여년의 역사가 있다. 동쪽의 정방은 등소평의 조부가 건설하였으며 남쪽의 남상방은 등소평의 아버지가 등소평이 집을 떠난후 건설한것이다. 전체 정원은 토지면적이 833.4㎡이며 총 17간이 있다.1951년에 등소평의 가족들은 전부 중경으로 이주하였으며 등소평은 옛방산을 전부 현지 정부에 교부하고 정부에서 마을사람들에게 나누어 거주하게하였다. 등소평의 곡절적인 인생과 같이 고향집도 온갖 풍파를 격었다. 이곳은 공중 식당, 문화소, 유치원, 보관실로도 사용되었으며 이러한 용도의 원인으로 “문화혁명”의 동란속에서도 완벽히 보존되었다. 1980년에 뉴질랜드의 유명한 작가 루이•.아이리가 처음으로 등소평의 고향집을 방문하고 이곳은 “동방 지평선”이라고 찬송하였다. 1998년2월19일에 강택민은 친필로 “등소평동지고거”간판을 제사하였으며 2001년7월3일에 국무원은 이곳을 “전국 중점 문물 보호단위”로 공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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