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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비
신도비는 청나라 가경년간에 정부에서 등소평의 선조 등시민의 공독을 표창하기 위하여 건설한것이다. 등소평의 선조 등시민, 자 손재, 호 몽암, 융정10년(1732년)에 중거하고 건륭원년(기원1736년)에 진사 급제하고 한림원에서 편수를 받았으며 나중에 사강학사로 승급하고 최종 건륭 10년 (기원 1745년)에 대리사정경 (大理寺正卿) (현재의 최고 인민 법원원장에 해당함)으로 승급하였다. 등시민은 충실한 관인이고 과감하고 정직하며 정치적 성적이 유명하였으며 이름이 멀리까지 날리였다. 노년후 고향에서 돌아가셨으며 나중에 통봉대부를 수여 받았다.
신도비는 등소평 고향집으로부터 약500m이며 비석높이는 약5m이며 비석에는 “호수통봉대부 대리사정경 등공신도”라고 써있다. 비석은 거북 모양의 동물 등에 세워졌으며 이 거북이 같은 동물의 이름은 비희(赑屃)라고하는 신물이다. 전설에서는 용왕의 제9 아들이라고 한다. 비석 양측에는 망주를 세었으며 구름과 용의 조각으로 모양이 아주 아름답다. 기둥상에는 앉은 사자를 조각하였다. 유감스러운것은 원비석이 “문화 혁명”중에서 훼손되었다. 본 비석은 2000년에 복건하고 2003년3월에 보정 완료하였다.
신도비또 등소평이 어린시절에 놀이하던 장소이다. 전설에 의하면 패방촌에서는 당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비희 위에서 장난하지 못하게하였으며 신령을 놀라게하여 문제를 일으킬수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등소평은 믿지않았으며 어린 친구들과 함께 장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돌로 만들어진 거북이 얼마나 큰 능력이 있는가, 나는 믿지않는다. 나는 기어올라가 시도할것이다” 등소평은 그 신도비에 처음으로 올라간 어린이가되었다. 이 전설은 어린시절의 등소평이 감히 시도하며 사실을 추구하며 두려워하지않는 정신을 충분히 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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